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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r note in Chicago/The infinite

그냥,,



오늘도 여유롭다.
할 일이 많고 바쁠 때도 있지만, 사실 그 일이 대부분 살림과 관련된 일이라
안하면 누가 뭐라 하는 것도 아니고 뒤로 미루면 또 슬금슬금 미뤄지는 것이기도 하니...

늘상 여유로운 게 사실이다.

한국에서는 이런 여유를 느껴본 적도, 이렇게까지 여유로운 날이 올거라 생각한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참 많이 다르고 참 많이 변했다.

미국오면 영어는 다 잘하게 되는 줄 알았는데, 노력없이 얻어지는 건 하나도 없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여기에 와서 는 거는... 살림인 것 같다.
가정을 꾸리고 집을 가꾸고 먹고 사는 것.
여전히 왕초보 수준이긴 하지만, 아무것도 모를 때에 비하면
가치관을 가지고 가정을 일궈나가는 것 같아서 주부의 역할이 정말 중요하구나 하고 느끼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선 보통 회사를 다니다가 그만두고 전업주부를 하면 "놀아"라는 표현을 잘 쓴다.
하긴- 나도 가끔 누군가 뭐하고 지내냐고 하면 나도 모르게 놀아-라고 할 때가 있으니.

근데 실상 전업주부는 노는 사람은 아니다.
사회 어느 기업에 속해서 돈을 벌거나 사업을 해서 돈을 버는게 아닐 뿐,
그 일의 가치는 직장인 못지 않다.
그것이 눈에 드러나기 힘든 주관적, 부가가치적인 일이기 때문에 
잘해도, 못해도, 다 그만큼 티가 안난다. 
직장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면서 살림까지 잘 해낸다면 진정한 파워우먼이고, 투 잡을 해내는거다.
반면, 전업주부도 다 같은 전업주부가 아니라는 결론도 난다.
그래서 나는 내가 '노는' 전업주부가 되는 건 싫었던 것 같다.
그건 미국에 살면서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 않은 것보다 훨씬 더 싫었나보다.


공부를 하거나 일을 하는게 아닌 이 상황이
좋으면서도 또 익숙치 않고 뭔가 걱정되기도 하고... 그랬다.
쉬고 싶긴 했지만, 돈을 안버니까 경제적 부담도 거머쥐어야 하고,
그런건 내가 절약하고 안쓰면서 감당한다고 해도
또 '나는 누구인가' '난 여기에서 뭐하고 있는가' 이런 생각도 종종 들고,
같은 시간에 일하면서 아기도 키우는 친구들을 보면 왠지 내가 퇴보하는 기분도 들고.
그게 이상적인 모습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아니면서 걱정하다 보면 끝도 없이 생각이 꼬리를 물어서
우울해지기 쉽다는 걸 알았다.

나는 눈치도 빠르고 이런 생각정리는 휙휙 되는 편이지만, 한 번 결론을 내려도
똑같은 고민과 번뇌를 반복하고 결론내리는 짓을 수만번씩 하는 피곤함을 지녀서
이미 1년 전에 결론 내놓고도 요즘도 가끔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다.
정말 효율적이지 않다.

내게 주어진 이 시간이 얼마나 황금같은지는 말해 무엇하리~

가끔 지나온 내 자취 속 사람들의 이야기, 내가 소속되었던 곳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 내가 정말 평화로운 곳에서 행복한 생각만 하며 속세를 잊고 살고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나는 이미 젖어들어 인식하지 못했지만,
내가 누리는 행복들이 참 큰 것이로구나, 그러고 보면 스트레스가 정말 많이 없어졌구나 싶다.
지나고 나면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소중한 순간일 것이다.

이 시간에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게 정답인 줄은 알면서도
그 최선을 또 자꾸 미루는 경향이...
이런 게으름은 언제까지 가지고 갈건지 답답하기도 하다.

하루가 24시간이고, 내 마음대로 다 쓸 수가 있는데,
별걸 안하며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고, 그러다보니 하루하루가 더 짧게만 느껴진다.
아직도 하루 종일 뭔가 가득차 있지 않으면 불안해 하는 심정이 남아있는 것 같기도 하다.
ㅎㅎ 이렇게 말하면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살아온 것 같나.
쓰고보니 웃기다. 난 몇몇 시기를 빼면 늘 게을렀던 것 같아서...

의무가 있거나 정해진 룰이 없는 삶이다 보니 더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음, 그래도 가정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막중한 책임이 있긴 하다. 크크.
그래도 우리 남편은 맨날 자기는 결혼 참 잘했다고 하니,
내가 남편 내조나 가정경영을 개판치는건 아닌거 같고-
아니 뭐 솔직히,, 결혼 전의 나를 생각한다면, 칭찬받아 마땅하지.
내가 이렇게 살림을 할 줄 알게 될거라고 누가 생각했겠어. ㅎㅎㅎ
미국 살아서 한국음식에 더 집착하고 자급자족하게 되는 경향도 있긴 하지만,
알고 보면 다 사람차이일거다.


횡설수설...
이제서야 이 블로그가 내 블로그 같다.
하하.


주말에 뭘 많이 만들었더니 오늘은 아무 것도 하기가 싫네.

나가기도 귀찮고... 점심먹기도 귀찮고...